DDM vs DCF Model
금융 자산의 가치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미래 발생하는 현금 흐름과 리스크를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주식의 경우 몇가지 더 특수한 성격을 가지기 때문에 비교적 Valuation(가치 평가)이 복잡해진다고 볼 수 있다.
우선 채권의 경우 만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청구권’과 ‘현금흐름’이 비교적 명확하게 맞아떨어진다. 다시 말해, 채권 A를 보유한 투자자가 청구할 수 있는 권리인 ‘청구권’과 그 투자자에게 향후 수년 내에 발생할 ‘현금흐름’은 대개 일치한다. 하지만 주식의 경우 만기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청구권’과 ‘현금흐름’이 일치 하지 않는 듯이 보일 수 있다.
기업 A는 영업을 통해 100억원을 벌었다. 이 중 이자비용으로 50억원을 지출했다고 해보자. 세금을 무시하고 단순히 본다면 주주에게 귀속된 이익은 50억원일 것이다. 여기서 주식 보유자는 이론적으로 50억원의 남은 이익에 대해 청구권(Residual Claim이라고도 한다.)을 가진다. 실제로 50퍼센트를 초과하는 지분을 가진 대주주에게는 이는 명확한 사실이다. 하지만 적은 지분을 가진 소액투자자에게 있어 ‘청구권’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 있다.
기업 A는 주주 회의를 통해 주주에게 ‘귀속된’ 50억원의 이익을 어떻게 할지 결정할 것이다. 즉 50억원 중 일부는 배당으로 주주에게 환원하고, 나머지는 기업 내부에 유보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주주의 경우 이러한 이익배당률(Payout Ratio)를 결정하는데 실제로 유의미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 따라서 50억원을 모두 배당하게 할 수도, 모두 유보하게 할 수도 있다. 올해 이익을 모두 유보했다 하더라도 향후에 언제든 주주 총회에서 유보된 이익을 배당으로 주주환원 하도록 주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 따라서 대주주에게는 주주에게 귀속된 이익 50억원에 대한 청구권을 모두 실제 그만큼 가치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반면 소액투자자에게는 50억원에 대한 ‘청구권’이 무의미해 보인다. 대주주가 정한 ‘배당’을 통해 실제로 주당 지급된 ‘배당금’이야 말로 소액투자자에게 귀속된 ‘현금흐름’일 것이다. Valuation의 가장 기본적인 두 모델인 DDM과 DCF Model은 바로 여기서 차이점이 있다. DDM의 경우 소액투자자의 관점에서, ‘배당금’ 만을 현금흐름으로 인식하는 모델이다. 반면 DCF Model의 경우 대주주에게 있어 주식의 가치를 구하는 것과 같은 방법을 취한다. 최초 주주에게 귀속된 ‘청구 가능한 이익’ 전체를 실제 현금흐름으로 간주하여 Valuation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 DDM의 한계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 중에서 일부만을 배당으로 주주 환원하면 나머지는 기업 내에 유보되는데, 이렇게 기업 내에 쌓인 가치도 사실상 주주에게 귀속된 가치이다. 실질적인 주주의결권한이 제한되는 소액투자자의 경우 기업에 유보된 이익에 대해 실제로 보상받기 위해서는 기업이 청산되어야 한다. DDM에서는 일차적으로 배당금은 현금흐름으로 인식하지만, 배당되지 않고 유보된 나머지 이익은 ‘기업청산’시에 소액투자자에게 실제로 지급된다고 본다.
하지만 문제는 이론적으로 계속 기업을 가정한다는 것이다. 이는 쉽게 말해 기업의 영업이 무한히 지속된다는 뜻이다. 청산이 무한히 미루어진다고 상정하다 보니 유보된 이익은 영영 소액투자자에게 환원될 수 없어는 것으로 간주하게 된다. 이익배당률이 높은 기업의 경우 이러한 가정의 한계가 크게 영향을 주진 않는다. 하지만 배당률이 낮거나 무배당 기업의 경우 여기서 비롯되는 Valuation 모델의 한계가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 DCF Model의 적용: 기업인수
소액투자자의 입장에서 DCF Model은 의미가 없어 보인다. 아무리 기업이 주주에게 귀속되는 50억의 이익을 번다 한들, 대주주가 주주 환원 정책을 지지하지 않으면 실질적인 현금흐름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DCF Model이 아주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무배당 기업 B를 생각해보자. 대주주 김씨는 기업 B의 지분 약 50퍼센트(정확히 50%보다 1주 더 많이)를 소유하고 있다. DCF Model을 통해 도출한 기업 B 주식의 적정 시가총액이 2,000억원인데 비해 현재 시장 가격으로는 시가총액이 1,000억원에 형성되어 있다고 해보자. 시장 가치를 바탕으로 보면 대주주 김씨의 자산가치는 500억원이다. 이때 대규모 자본을 가진 전문 투자회사(사모펀드 등) 가 등장한다.
투자회사는 김씨에게 프리미엄을 얹은 가격을 제안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시장가치의 50%인 250억원을 제시했다고 해보자. 대주주 김씨는 현재 500억원의 가치를 가진 자산에 대해 750억원으로 계약을 하는 것이므로 밑지는 장사는 아닐 것이다. 만약 대주주 김씨가 투자회사의 제안을 수락하면, 투자회사는 기업 B 지분의 약 50%를 750억원에 취득한 것이 되며, DCF Model을 통해 계산된 지분 50%에 대한 적정 가치는 1,000억원 이므로 약 250억원의 이득을 올릴 수 있다.
일련의 과정 속에서 시장에서 거래되는 기업 B의 주식도 인수 가격에 근접하게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투자회사가 대주주 김씨에게 필요한 주식의 전량을 매수하지 않고 시장에서 공개 매수를 병행할 수도 있다. 아니더라도 주주 적정가치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인수 가격이 ‘시그널’로 작용할 가능성도 크다. 실제 현실에서는 투자회사가 기업 B를 아예 상장 폐지 시키는 경우도 있는데, 투자회사가 나머지 소액 투자자들에게도 기존 시장가격 보다는 적정 가치(DCF Model 상의)에 근접한 가격을 제시할 것이 틀림없다.
따라서 DCF Model 상의 적정 가치와 시장 가치가 크게 괴리되는 현상은 투자회사와 같은 존재에 의해 없어지게 된다. 자금력이 있는 투자회사의 경우 기업 B는 사실상 Arbitrage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한계점이 있는데, 몇몇 기업의 대주주는 저마다의 ‘사정’이 있어 아무리 프리미엄을 제시하더라도 투자회사에게 지분을 넘기지 않을 수 있다. 또는 특정 기업이 처한 환경이 특수하여 투자회사의 Arbitrage 대상이 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대주주의 사정이라고는 해도 몇몇 명확한 경우를 제외하면 사실 일반적인 기업들은 투자회사가 제시하는 엄청난 프리미엄을 물리칠 수 있는 대주주가 많지 않을 것이다. 실제 기업 지배구조는 앞서 기업 B와 같이 한 명의 대주주가 50퍼센트를 초과하는 지분을 전부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은 일부 대주주와 나머지 소액주주들로부터 적정한 프리미엄에 1대주주보다 더 많은 지분을 확보할 수 있을 가능성이 크다.
투자회사의 Arbitrage 대상이 되지 않는 기업은 어떤 것들이 있을 수 있을까? 다양한 경우가 있을 수 있지만 한가지 예를 들어, ‘방위산업’을 영위하는 기업의 경우 국가적 차원에서 외국 투자회사의 인수를 반대할 수 있다. 이 방위산업 업체의 시가총액규모가 매우 커서 해당 국가 내부에 있는 투자회사 규모로는 Buyout이 불가능할 때 주가는 적정 가치로부터 크게 괴리할 수도 있다.
# DCF Model의 적용: 자사주
투자회사가 없다 하더라도 시장 가치와 적정 가치의 괴리는 없어질 수 있다. 적정 시가총액이 2,000억원인 기업 B의 대주주 김씨는 현재 시장에서 시가총액이 1,000억원에 형성되어 있는 것을 확인한다. 이는 과도한 저평가라고 생각하여 김씨는 기업 B가 자사주를 취득하도록 한다.
김씨는 본인의 주식은 매도하지 않고 기업 B가 자사주 매입을 하도록 의결하는데, 이 때 자사주 매입을 통해 본인의 지분율이 상승하게 된다. 즉 기업이 벌어들이는 또는 유보되어 있는 이익을 ‘주주 환원’할 경우 김씨 본인에게 할당되는 비율이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자사주를 매입하기 위해 기업은 유보되어 있던 이익을 이용한다. 따라서 김씨를 포함한 주주들의 청구권은 그 가치를 점점 잃게 되는 것이다. 만약 주식에 대한 시장가격이 적정 수준이라면, 자사주가 매입되어 김씨의 지분율이 상승하는 효과와 자사주를 매입하기 위해 유보금이 지출되는 효과가 정확히 상쇄된다. 하지만 시장가격이 적정 가격보다 낮다면, 김씨의 지분율이 상승하는 효과는 커지는데 비해 기업에서 지출한 유보금은 상대적으로 적은 수준에 머물 것이다. 다시 말해 김씨는 자사주 매입을 지시하여 크게 이득을 취할 수 있다.
김씨는 지속적으로 자사주를 매입하며 본인의 이득을 극대화 할 것이다. 이 과정 속에 주가는 오르게 되며, 결과적으로 DCF Model 상의 적정 가치와 시장 가격이 비슷한 수준에 이르면 김씨는 자사주 매입을 중단할 것이다.
특수한 제약이 없고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하는 주주가 존재한다면 이와 같이 본질 가치 대비 시장가치가 크게 괴리할 수 없다.
# 활용
안타깝게도 시장 참여자 들은 완벽하게 합리적이지 않다. 이는 특히 단기적으로 더욱 그러한데, 합리성에 필요한 정보와 분석 능력에도 개인별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합리적인 시장참여자에게도 현실적인 제약들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위의 이론적 접근으로는 현실을 완벽히 예측하거나 설명하는데 무리가 있다.
특정 주식을 Valuation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DCF가 이론적으로는 아주 완성도 높은 방법론이지만, 현실적인 제약이 많다. 영업을 통해 벌어들이는 이익을 완벽하게 추정하는 것부터가 상당히 비현실적인 작업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DCF Model은 적정 가치를 나타내는 일종의 ‘상한선’으로 볼 수 있다. 예상되는 이익을 적정한 리스크(할인율)로 할인해 준 DCF Model 상의 적정 주가는 그 자체로는 완벽한 하나의 정답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여기서 도출된 적정 주가를 크게 상회하는 시장 가격은 ‘Overvalued’ 상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DCF Model에서 제시하는 적정 가치보다 실제 시장가격이 낮게 형성되어 있을 때는 어떨까? 이 경우 DCF Model을 맹신하여 이를 매수기회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특히 단기적으로는) 잘못된 판단이 될 수도 있는데, 현실적인 많은 제약 들로 인해 위에서 풀이한 이론적인 DCF Model이 잘 작동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주주에게 있어 해당 기업이 가지는 의미가 단순히 금액으로 나타낼 수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 대주주는 프리미엄을 제시한다 하더라도 기업을 팔지 않을 것이며, 단기적으로 시장의 Mispricing을 이용하기 위해 자사주를 매입하는 등의 영민한 합리성을 보여주지 않을 수 도 있다. 크게 보면 제반적인 영업 및 금융 시장 환경이 불투명해 실제 리스크보다 투자자에게 인식되는 리스크가 더욱 큰 경우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어찌됐든 다양한 이유로 시장 가격은 DCF Model상의 적정 가치에 못 미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이런 기업이 적당히 배당금을 지급한다면 어떻게 될까? DDM을 통해 Valuation한 적정 가치는 거의 의심의 여지가 없다. 배당은 실제로 매년 주주에게 확실히 귀속되고 있으며 DCF Model에서의 여러 가지 가정들이 없더라도 DDM은 충분히 작동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DDM을 통해 도출한 적정 가치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Valuation의 하단인 것이다.
정리해보자. 어떤 기업의 시장 가격이 DCF Model의 적정 가치보다 높을 경우 Overvalued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DCF Model의 적정 가치보다 시장 가격이 떨어진다 하더라도 Undervalued 상태로 보기는 어렵다. 반면 DDM 상의 적정 가치보다 시장 가격이 떨어지면 이것은 확연히 Undervalued 상태로 보아야 할 것이다.
# 다른 Valuation 모델들
1-Stage Model에 기반한 PER를 이용한다고 생각해보자. DDM을 바탕으로 도출한 Justified PER는 Valuation 하단을 형성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 PER 공식 중의 이익 배당 성향(Payout Ratio)을 90%이상으로 가정하고 계산한다면, 이는 DCF Model에서처럼 이론적으로 좀더 완성도 높은 Valuation 모델이 되며 동시에 Valuation 상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
RIM을 활용하는 경우 암묵적으로 Payout Ratio를 100%로 가정한 것과 유사하다. 따라서 이는 Valuation 상단으로 작용한다.
이상의 논의는 장기적으로 회계적 이익과 현금 흐름이 동일하다는 가정하에 진행하였다. 어떤 기업의 이익과 현금흐름이 크게 차이를 보인다면 RIM이나 배당성향을 높게 가정한 PER를 사용하는 것보다는 실제 현금 흐름을 추정하는 DDM이나 DCF가 더욱 적합할 것이다.